사기전문변호사가 차용금 사건을 맡으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돈을 갚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돈을 빌리던 그 순간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말했느냐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사람은 많지만 그들이 모두 사기꾼은 아니다. 민사상 채무불이행과 형사상 편취를 가르는 선은 돈을 받은 시점에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에 있고, 이 판단은 나중의 결과가 아니라 그때의 사정으로 이루어진다.
편취의 범의는 원칙적으로 금전을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빌릴 당시에는 갚을 계획과 능력이 있었지만 사업이 기울어 갚지 못하게 된 경우는 사후의 사정 변경이다. 반대로 빌리는 순간 이미 갚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있는 것처럼 말했다면 그 자체가 기망이다. 같은 결과라도 출발점이 다르면 전혀 다른 사건이 된다.
그래서 수사에서는 돈을 받을 당시의 재산 상태와 채무 규모가 세밀하게 조사된다. 이미 여러 곳에서 빌린 돈이 밀려 있었는지, 소득이 끊긴 상태였는지, 다른 채권자의 독촉이 시작되었는지가 확인된다. 이런 사정을 상대에게 숨긴 채 돈을 빌렸다면, 말로 거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알려야 할 사정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돈의 용도도 중요한 판단 자료다. 사업 자금이라며 빌린 돈을 곧바로 다른 빚을 갚는 데 썼거나 개인 소비에 사용했다면, 처음부터 말한 용도가 거짓이었다는 추정이 붙는다. 반대로 실제로 말한 용도에 돈이 들어갔고 그 뒤 사정이 나빠진 것이라면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계좌 흐름은 이 부분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 주므로 초기에 정리해 두어야 한다.
변제 노력의 흔적은 범의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자료다. 일부라도 갚았거나 이자를 꾸준히 냈거나, 갚지 못하게 된 뒤에도 연락을 이어가며 상환 계획을 제시했다면 처음부터 편취할 뜻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돈을 받은 직후 연락을 끊었거나 주소를 옮겼다면 범의가 강하게 추정된다. 당사자는 이 차이를 가볍게 여기지만 결과에는 큰 영향을 준다.
차용 당시 제공한 담보나 설명의 진실성도 따져진다. 존재하지 않는 부동산을 담보로 말했거나, 확정되지 않은 수입을 확정된 것처럼 설명했거나, 다른 사람의 보증을 받은 것처럼 꾸몄다면 기망의 수단이 명확하다. 다만 낙관적인 전망을 말한 정도라면 기망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설명의 내용이 사실의 진술이었는지 전망의 표현이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피해자가 돈을 빌려준 이유도 함께 본다. 빌려준 사람이 상대의 재산 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거나, 높은 이자를 기대하고 위험을 감수한 것이라면 기망에 의해 착오에 빠졌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이 점은 범의와 별개로 기망과 처분 사이의 관계를 흔드는 요소가 되므로, 당시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가 자세히 조사된다.
여러 차례에 걸쳐 돈을 빌린 경우에는 시점을 나누어 판단한다. 처음 빌릴 때는 갚을 능력이 있었지만 뒤에 빌릴 때는 이미 능력이 없었다면, 뒤의 차용만 편취로 평가될 수 있다. 하나의 관계로 뭉뚱그려 전체를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위험하다. 각 시점의 재산 상태와 설명 내용을 따로 정리해 두는 것이 정확한 판단을 이끌어 낸다.
차용의 형식도 살펴야 한다. 차용증이나 계약서에 갚을 날짜와 이자가 적혀 있는지, 아니면 구두로만 이루어진 거래인지에 따라 당시 양쪽이 이 거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드러난다. 투자에 가까운 거래였다면 원금 손실의 위험을 빌려준 쪽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되고, 반대로 확정된 상환을 전제로 한 거래였다면 갚을 능력에 대한 설명이 더 무겁게 평가된다. 거래의 성격을 먼저 규정해야 범의 판단의 틀이 정해진다.
돈을 갚지 못하게 된 뒤의 대응도 별도로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상환이 어려워진 시점에 상대에게 사정을 알렸는지, 새로운 상환 계획을 제시했는지, 일부라도 갚기 위해 재산을 처분했는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반대로 그 시점에 다른 사람에게 재산을 옮기거나 새로 돈을 빌렸다면 편취 의사가 뒤늦게라도 있었다는 방향으로 읽힐 수 있다. 사후의 행동이 처음의 의사를 추정하는 자료로 쓰인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피해자와의 합의는 범의 판단과는 별개의 축이다. 갚지 못한 돈을 뒤늦게 갚거나 일부를 변제하고 합의하는 것은 처분과 양형에 반영되지만, 처음부터 편취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자료는 아니다. 반대로 합의를 서두르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인정하는 문서를 남기면 그 문서가 범의를 인정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합의서의 문구를 정하기 전에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어떤 사실을 다투는지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
사기전문변호사가 이런 사건에서 힘을 쏟는 부분은 차용 시점의 상황을 자료로 복원하는 일이다. 당시의 통장 내역, 계약서와 문자 기록, 소득 자료, 다른 채무의 상환 이력이 모여 그때의 의사와 능력을 보여 준다. 기억에 의존한 설명은 서로 어긋나기 쉽지만 기록은 시점을 그대로 증명한다. 초기 조사 전에 이 자료를 정리해 두느냐가 사건의 방향을 정한다.
결국 차용금 사건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출발이다. 갚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빌리던 순간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말했는지는 자료로 다툴 수 있는 영역이다. 그 순간의 사정을 정확히 보여 줄 수 있으면 채무불이행과 편취가 구분되고, 사건은 형사가 아닌 민사의 자리로 돌아갈 여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