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성립하려면 행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행위 당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있었는지가 문제되는 경우가 있다. 정신적인 장애나 질환으로 그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형사전문변호사 상담에서 이런 사정이 있는 사건을 다룰 때는 책임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새로 살피게 된다. 처벌의 전제가 되는 책임 자체를 짚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임능력은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사물을 변별할 능력과 그 변별에 따라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있었는지를 본다. 이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한 행위는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한 행위는 그 책임이 감경될 수 있다. 앞의 경우를 심신상실, 뒤의 경우를 심신미약이라 부른다.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이 판단이 병명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상태가 행위 당시 판단과 의사결정 능력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핵심이다. 같은 질환이 있어도 행위 당시의 구체적 상태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의학적 평가와 법적 판단이 함께 작용하는 영역이다.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정신감정이다. 전문가가 행위자의 정신 상태를 평가해 행위 당시의 능력을 추정하는데, 과거의 진료 기록과 행위 전후의 정황이 함께 고려된다. 다만 감정 결과가 곧바로 결론이 되는 것은 아니고, 법원이 여러 사정을 종합해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감정은 중요한 자료이지만 그 자체로 결론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자료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전부터의 진료 기록, 치료 이력, 복용해 온 약물, 행위 당시의 상태를 보여주는 정황이 자료가 된다. 행위 전후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는지에 관한 주변의 진술도 참고가 된다. 이런 자료가 흩어져 있거나 정리되지 않으면 실제 상태를 제대로 보여 주기 어렵다.
감정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신중한 문제다. 정신감정은 전문가의 평가이지만, 그 결과에 의문이 있으면 다툴 수 있다. 감정이 어떤 자료를 근거로 이루어졌는지, 행위 당시의 상태를 제대로 반영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하나의 감정 결과만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안에서는 추가적인 평가를 요청하는 길도 있다. 감정서에 적힌 결론이 곧바로 재판의 결론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 근거와 과정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책임능력이 인정되지 않거나 미약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와 함께 치료를 위한 처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재범의 위험이 있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처벌과 별개로 일정한 시설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처분이 함께 내려질 수 있다. 이는 처벌을 대신하거나 보완하는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책임능력을 다투는 것은 단순히 형을 줄이는 문제를 넘어, 이후에 어떤 처우를 받게 되는지와도 연결된다. 전체 그림을 놓고 방향을 정해야 하는 이유다.
주의할 것은 스스로 초래한 상태에 대한 취급이다. 예컨대 자의로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그런 상태를 이유로 책임을 벗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능력이 저하될 것을 알면서 스스로 그런 상태를 만든 것이라면 달리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경위로 그 상태에 이르렀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책임능력이 문제되는 사건은 처벌의 감면과 함께 이후의 처우도 고려된다.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처벌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므로, 치료와 재활로 이어지는 방향을 함께 검토하게 된다. 단순히 형을 줄이는 것을 넘어, 재발을 막고 회복을 돕는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본인과 사회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주장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근거가 부족한데 무리하게 주장하면 오히려 신빙성을 잃을 수 있고, 반대로 명백한 사정이 있는데 이를 살피지 못하면 부당한 결과가 굳어질 수 있다.
형사전문변호사 조력을 받으면 책임능력이 다툼의 여지가 있는 사안인지, 어떤 자료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정신감정 절차에 대비할 수 있다.
책임능력의 문제는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행위 당시의 상태를 정확히 밝히고, 그것을 자료로 뒷받침하고, 이후의 치료까지 고려하는 것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길이다. 처벌의 전제를 짚는 만큼 사건의 근본을 다시 보는 작업이 된다.